(포항=연합뉴스) 안홍석 기자 = "아내에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. 홑몸이 아닌 데다 입덧도 있고 힘든 와중에 제 눈치 보게 했네요."
프로축구 K리그1 울산 HD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주민규(34)는 후반기 선수단에서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을 선수다.
2021시즌과 2023시즌 K리그1 득점왕을 차지한 울산의 명실상부 '주포'이지만, 석 달 넘게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.
그는 지난 7월 13일 FC서울과의 23라운드 1-0 결승골을 마지막으로 더는 득점하지 못했다.
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지난 9월 10일 2026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오만과 원정 경기에서 골 맛을 봤지만, K리그1에서는 무득점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다.
지난 7월 28일 김판곤 감독이 부임한 뒤 한 번도 득점하지 못한 점도 주민규의 가슴을 짓눌렀다.
김 감독은 늘 주민규를 '활화산'에 비유하며 "언젠가는 터질 것"이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.
그랬던 주민규가 27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'원정 동해안 더비'에서 기다리던 골 맛을 봤다.
울산이 1-0으로 앞서던 후반 19분 보야니치의 패스를 받은 주민규는 골 지역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을 날려 울산의 승리에 쐐기를 꽂았다.
서울과 경기 이후 12경기, 3개월여 만에 터진 주민규의 시즌 9호 골이었다.
수훈선수로 경기 뒤 기자회견에 나선 주민규는 웃지 못했다. "아직 갈 길이 멀다"며 자신을 더 다그치기만 했다.
주민규는 "골이 들어갔을 때도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. 아직 더 많은 골을 넣어야 한다"면서 "다음 경기를 준비하면서, 예전보다는 찬스를 살릴 수 있는 여유가 (오늘 득점으로) 생긴 점은 다행"이라고 말했다.
이어 "(무득점이 길어지면서) 동료 선수들한테 굉장히 미안했다. 동료들이 헌신하고 수비하는 가운데 내가 찬스를 살렸더라면 승점을 더 가져올 수 있는 경기들이 많았다"면서 "오늘 넣은 게 김판곤 감독님 부임 뒤 내 첫 골로 알고 있다. 감독님께도 죄송했다"고 말했다.
주민규가 가장 미안해한 사람은 아내였다. 임신 중인 그의 아내는 부진에 힘겨워하던 그의 눈치를 많이 봤다고 한다.
주민규는 "홑몸이 아닌 데도 날 생각해준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"면서 "이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"고 힘줘 말했다.
울산은 이날 승리로 K리그1 3연패의 '9부 능선'을 넘었다.
내달 1일 열리는 36라운드, 2위 강원FC와 홈 맞대결에서 승리하면 우승을 확정한다.
주민규는 "올 한 해 아쉬운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, 내가 골 넣고 우승한다면 그런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"면서 "그러기 위해 많이 노력하겠다"고 다짐했다.
한편, 김판곤 감독은 "주민규의 골 장면을 보며 그의 '퀄리티'를 다시 한번 느꼈다"면서 "(무득점이) 한 석 달 이어졌는데, 그동안 주민규가 골 넣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"며 축하했다.